천명관의 고래는 팟캐스트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한창 독서에 불을 붙이던 시기라 이것저것 보고 싶은 욕심에 전자책을 잔뜩 사 놓아 리스트에만 올려놓고 구매하지 못한 책이었다.
팟캐스트를 통해 전해 들은 고래의 느낌은 아주 거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단순히 항구의 거친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본 고래는 세 여인들의 이야기. 시대도 전쟁 전후의 이야기였기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소설치고는 꽤 두툼했던 책이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게 만들어 버리는 흡입력. 박복한 세 여인의 삶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늙은 노파의 이야기로 시작해 금복의 이야기, 춘희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으면서 이어지지 않을듯하면서 이어진다.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재미를 더했다.
많은 강렬한 캐릭터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춘희. 금복의 딸로 죽은 걱정의 딸이었다. 4년 전 죽은 걱정의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흡사 저주받은 것과 같았고, 춘희는 금복에게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 했다. 그래서 계속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다리며 벽돌의 굽는 춘희. 훗날 그녀는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 불리게 된다.
고래는 여태까지 접해보지 못한 형식의 소설이었다. 강한 이야기의 흡입력과 빠른 전개에 어느새 마지막 장을 읽고 있게 된다.
큰 물고기가 산속에 떨어지면 불기둥이 치솟아 하늘에 닿고 남쪽에서 온 사내가 술에 취하면 너희의 자손은 검불처럼 쓰러지리라.
p 240
이즈음 그에겐 이전의 당당하고 인정 많은 여장부의 모습은 간데없고 이기심과 치졸한 복수심으로 가득 찬 속 좁은 사내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