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균(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은 것) : 소재원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우연히 책 선물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뉴스에서는 연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들고 있었지만 그저 불매운동에 동참하면 되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다. 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5년 만에 다시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고, 어차피 이 이야기도 곧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마음 써가며 화낼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피해자들에 관련된 다큐를 보면서 가슴 아팠지만 한 명이 더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은 내가 생각하는 것 상상이상이었다. 

 너무나 억울하고 억울해서 가족들을 따라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바라는 건 그저 사과뿐이었지만 기업도 국가도 일반 시민들도 누구 하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귀울 여주지 않았다. 기업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만 기다렸고, 국가는 그런 기업의 뒤를 봐주고 있었고, 시민들은 무관심했다. 나 역시 무관심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만든 무관심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읽는 내내 먹먹했다. 도우고 싶지만 도울 방법을 몰랐다. 예전에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포기했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절대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기업을 용서하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90일 만이었다.
민지가 세상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 지 정확히 90일 만이었다.
엄마의 젖을 물린지 90일 만이었다.
무엇이든 호기심 어른 눈으로 바라본 지 90일 만이었다.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지 하염없이 울기만 한 지 90일 만이었다.
두 명의 가족이 세 명이 된 지 90일 만이었다.
등본에 우리가 나란히 이름을 올린 지 90일 만이었다.
아빠로 살아간 지 90일 만이었다.
90일 만에 나는 모든 걸 잃었다.
90일 만에 내 전부를 모두 잃었다."
- 8p -

"죽은 사람은 있는데 누구도 사과하지 않아요. 처벌받지도 않고 있어요. 차라리 살균제를 넣은 나는 현행범이니 나라도 처벌을 해주세요. 누구든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야 끝나는 거잖아요. 누구 하나는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죽은 사람만 억울하잖아요. 나라도 붙잡아가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 53p -

"그거 아세요? 평범하고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착한 가장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건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웃긴 건 피해자를 사지로 내모는 역할은 높은 사람들이 아닌 억울하게 한통속으로 취급받는 착실한 가장들이라는거예요."
"높은 곳의 양반들이 악행을 저질러서 평범하고 착실한 가장들과 가족들이 피해를 보고 죽임을 당하는데도, 우리는 높은 곳의 죄인들을 기꺼이 변호하고 그들을 보호하며 억울한 우리 이웃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요."
- 61p -

"애비란 말이다. 지킬 것을 빼앗겼을 때 강해질 수 있단다. 지킬 것이 있을 땐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소리소문없이 살아가지만 그것들을 빼앗겼을 땐 누구보다 독하고 강해지지. 넌 그만큼 강해질 수 있니? 그래야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 79p -

"정치는 뻔뻔하게 하는 겁니다. 저들의 뻔뻔한 이야기에 놀아나는 국민이 없을 것 같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우리나라 국민 50대 이상 대부분이 중졸이라는 거? 40대 이상 독서량이 1년에 한 권도 안돼요. 40세부터 90세까지 인구가 우리나라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는 건 아세요? 어쩔 수 없어요. 나라를 팔아먹든 말아먹든 볶아먹든 그들에겐 투표용지에 적힌 1번이 무조건 옳아요. 지금까지 그들이 얌전히 있었던 이유는 1번이 명분이나 이유를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들은 스스로 행동할 이유를 만들지 못하거든요. 야당을 깔아뭉개고 1번을 지켜주고 싶어도 반박할 논리를 만들어 줄 머리가 없어요. 명분도 무조건 1번이 만들어줘야 해요. 그런데 오늘 만들어 줬어요. 야당의 마녀사냥이라고. 그럼 그들은 그게 명분이고 행동할 이유가 돼요. 내일은 그들까지 정문 쪽에 합세해서 기업을 지킬겁니다. 설글라스 끼고, 호루라기 불고, 가스통 가지고 와서 애국 보수라며 앞뒤 상황이나 정황은 전혀 따지지 않고, 1번이 만들어준 말도 안 되는 이유만을 가지고 철통같이 기업을 보호할 겁니다."
- 149p -

"기업이 무너지는 경우는 무리한 확장이나 경영에 대해 판단 실수를 했을 때뿐이야. 나라가 기업을 무너뜨리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지. 오히려 기업이 도산위기에 있으면 세금을 써서라도 기업을 구제해주려는 노력은 빈번했지만 말이야. 정치는 쇼야. 그들만의 쇼. 어떻게 해서든 정권을 잡아 야당이라는 권력보다 더 큰 여당이라는 권력을 얻어 기업에 돈을 더 벌어가려는 쇼. 한마디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피 터지는 생산 활동이라는 말이야."
- 166p -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데 어떻게 해요. 평범한 아빠였을 뿐인 내가 그놈들에게 반한할 방법이 이것뿐인데 어떻게 적당히 할 수 있어요. 내겐 이 방법뿐이란 말이에요. 적당히 할 수 없어요. 내 목숨을 걸고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단식밖에 없어요. 이거라도 목숨 걸고 해야 해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반항이니까요."
- 184p -

"정말 변호사님이 권력에 눈이 멀게 되더라도 괜찮아요.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변호사님은 끊임없이 약자를 대변해야 하니까요. 변호사님은 다행히 시작이 좋아요. 약자들을 위해 나서는 것으로 출발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변호사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약자들이거든요. 졸부들의 지지를 받은 자들은 졸부들을 위해서 살아야 권력이 유지돼요. 기업을 위한 자들은 기업을 위해 일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 아닌가요? 변호사님의 권력은 약자들에게서 나오니까. 어쩔 수 없이 싫든 좋든 약자들을 위해야 변호사님의 권력은 유지될 수 있는 거잖아요."
- 19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