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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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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그날은 일본 통치 시절 위안부와 한센병 환자의 이야기이다. 위안부와 한센병 그리고 소록도, 교과서로만 배웠고 뉴스로만 듣고, 위안부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는 무의식적으로 피해왔던 것 같다.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쉬쉬하는 진실을 차마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치 않은 기회가 생기게 되었는데 인터넷 게시판에 괜찮은 책이 무료가 되었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위안부 소설이라 듣기는 했지만 그냥 퇴근길 심심풀이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로 위안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안이했고, 이제야 참혹했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두 명의 주인공으로 시작한다. 몸이 약했던 서수철의 정인 오순덕과 그런 순덕을 위해 의술까지 배워가며 돌보았던 서수철. 일본에 핍박받는 삶은 고되었지만 둘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기에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수철은 만주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고 오순덕은 공장에서 돈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로 가게 된다. 그렇게 둘의 끔찍한 기억이 시작된다.

 공장에서 번 돈으로 전쟁터로 보내진 정인(서수철)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었고, 살아남아서 고향에 있는 정인(오순덕)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갖은 학대와 인간 이하의 대우, 생체실험, 강제 노역뿐이었다.

 보는 내내 안타깝고, 끔찍하고, 참혹했다.  글로만 읽어도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는데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 앉아 계실 그분들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기억하는 일뿐일 것이다.




"조선놈이고 일본놈이고 우리에게는 그게 그거다. 어쩌면 조선놈들이 더할지도 몰라. 적어도 나는 여기에 있는 편이 훨씬 좋다. 죽어라 일만 하면 맞아죽을 일은 없지 않느냐."


- 한센병에 걸려 소록도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인의 말 -


"행복한 기억은 사라질 수 있고 슬픈 기억은 묻어둘 수 있어. 하지만 수치스러운 기억은 절대 사라지거나 묻히지 않아. 방법이 있다면 자네와 같이 수치심을 준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는 길이 유일해. 수치심이라는 건 상처를 준 사람만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어."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건 말이여. 지금도 수요일마다 일본놈들을 만나러 내 발로 가고 있다는 것이여. 과거에는 재봉공장에서 취직시켜준다는 거짓말로 스스로 찾아가 끔찍한 일을 겪게 하고, 지금에 와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복창 터지는 거짓말로 억울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찾아가게 만들고 있어. 내 평생을 죽어도 싫고 살아도 싫을 그놈들 쫓아다니게 만들어버린거여. 어찌 이리 잔인할 수 있단 말이여."

- 위안부로 끌려갔었던 오순덕 할머니의 말 -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꾸준히 살아가기만 하면 돼. 일본이 망했을 때 이 땅에 일본의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 힘 한 번 쓰지 않고 일본 땅이 되는 거야. 하지만 이 땅은 단군의 땅이며 그 후손들의 땅이라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나라의 이름과 왕의 성씨는 바뀌겠지만 여전히 단군의 후예인 우리가 살아가게 되는 거야. 역사의 정통성은 그래서 중요한 거야. 그리고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거야. 일본이 패전해서 물러간다 하더라도 일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땅을 빼앗기는 거야."

- 위안소에서 동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던 하춘희의 말 -


"역사는 우리를 기억할거야! 반드시 기억할거야!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우리는 순덕이를 살려 보내야해. 그래야 우리 무덤이라도 만들 수 있어. 죽어서도 기억되지 못하고 낯선 땅에서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릴래? 난 싫어. 순덕이가 살아나가서 먼훗날 우리를 고국으로 데려갈 거야. 후손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위로할 거야. 어차피 우리는 다 죽어. 선택해. 그냥 비명만 지르다 죽을 건지. 그래서 누구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고 더러운 매춘부로 저놈들의 기억과 저놈들의 역사에 기록될 것인지."

"기억해줘. 오늘 함께한 우리의 이름을. 그리고 꼭 알려줘. 우리가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억울하게 살아갔는지를."

- 위안소에소 죽음을 앞둔 하춘희의 말 -